1. 우리가 아는 우주는 겨우 5%뿐이고, 나머지 95%는 존재는 확실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2. 사람이 평생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총량은 물리적으로 겨우 4기가바이트 수준이며, 이는 지구와 우주 전체 지식에 비하면 100만분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3. 소크라테스의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은 겸손이 아니라 정확한 과학적 진단이었고, 이 무지의 자각은 신앙의 출발점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우주는 95%가 어둠이다
과학자들이 우주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조사해봤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별과 지구,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우주 전체의 겨우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머지 95퍼센트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 이름이 어렵게 들리긴 하지만 사실 뜻은 아주 간단하다. 무언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걸 쉽게 이해하려면 이런 상황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갔는데 발에 뭔가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있다는 건 발끝의 느낌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의자인지, 상자인지, 아니면 잠들어 있던 강아지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손으로 만져보거나 불을 켜기 전까지는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우주의 95퍼센트가 바로 이런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사실이 정말 신기한 이유는, 우리가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고 우주선을 쏘아 올릴 만큼 발전한 문명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우주 전체의 대부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과학 지식을 다 합쳐도 우주라는 거대한 그림의 아주 작은 조각만 색칠한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주라는 존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인슈타인도 100만분의 1%만 안다
우주가 이렇게 거대한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면, 그다음으로 궁금해지는 건 그럼 사람 한 명이 평생 알 수 있는 지식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이것마저도 숫자로 계산해냈다.
우리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은 1초에 무려 10억 개나 되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 의식이 실제로 이해하고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는 정보는 1초에 겨우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 비유로 설명하면, 소방차의 커다란 물 호스로 물을 콸콸 뿌리고 있는데 그 물을 작은 종이컵 하나로 받아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그냥 흘러가 버리고, 극히 일부만 우리 머리에 남는다.
이 속도를 그대로 계산에 넣으면 정말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공부만 한다고 가정해도 평생 저장할 수 있는 지식의 총량은 겨우 4기가바이트 정도다. 요즘 문구점에서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작은 USB 메모리 하나보다도 적은 용량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1초에 10개라는 처리 속도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든,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이든 거의 똑같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천재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답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담아두었는가가 아니라, 담아둔 지식을 얼마나 잘 정리하고 연결했는가에 있다.
컴퓨터 저장 공간으로 비유하면 똑같이 4기가바이트짜리 저장 공간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파일을 아무렇게나 마구 쌓아두고, 다른 사람은 폴더별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압축까지 해두었다. 두 사람이 가진 저장 공간의 크기는 똑같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활용하는 능력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정리와 압축의 달인들인 셈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사람 한 명이 평생 알 수 있는 지식은 지구와 우주 전체 지식에 비하면 대략 100만분의 1퍼센트,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작은 비율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숫자들을 정리해보면 정말 충격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우주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5퍼센트뿐이고, 그 5퍼센트 안에서도 사람 한 명이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건 100만분의 1퍼센트도 안 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아주 오래전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계산한 숫자들을 떠올려보면, 이 말이 단순히 겸손한 척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진단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모르는 상태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단순한 무지라고 부르는 상태인데, 이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아는 상태다. 두 번째는 이중의 무지라고 부르는 상태인데, 이건 실제로는 모르면서도 스스로는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상태다.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 상태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봤다.
100만분의 1퍼센트라는 숫자는 바로 첫 번째, 단순한 무지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이 작은 비율을 모른 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작은 부분만 알고 있는지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계속 배우고 질문하며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름이 곧 믿음의 자리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를 신학적인 관점으로 한 걸음 더 옮겨보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말해주는 구절들이 여럿 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보다 높다는 말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우주의 95퍼센트가 인간에게 감춰져 있는 것처럼, 신학에서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무지가 인간을 절망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 있다면, 사실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다. 믿음은 정확히 모든 걸 다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럼에도 신뢰하고 나아가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우주의 95퍼센트를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와, 신학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의 영역을 인정하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 다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름을 출발점으로 삼아 더 깊이 탐구하고 신뢰하는 태도를 취한다.
결국 우주도, 인간의 지식도, 신앙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만 알고 있는 존재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 모름 앞에서도 겸손하게 신뢰하며 계속 탐구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주와 지식과 신앙이 함께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