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실수와 자유의지에 관한 것 [81]

1. 신경과학계는 판단 실수를 뇌의 결함이 아니라 다른 시대에 맞춰진 정상 작동의 결과로 설명한다.
2. 인간은 원숭이보다 훨씬 미성숙한 뇌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학계가 말하는 인간 지능의 비밀이다.
3. 진화생물학이 말하는 무작위와 신앙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이 둘을 구분해야 진짜 통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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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계획했던 일을 미루고,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손해인 줄 알면서도 익숙한 선택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어설플까.

이 물음 하나에서 시작한 생각의 여정이 있다. 뇌과학 이론에서 출발해 진화생물학을 지나고, 신학과 철학을 거쳐, 마지막에는 운과 재능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그 끝에서 처음의 물음은 완전히 다른 각도의 답을 찾았다.


뇌과학이 말하는 판단 실수의 정체

신경과학자 게리 마커스는 인간의 판단 실수를 클루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클루지란 완벽한 설계 없이 있는 재료를 끌어다 급하게 조립한 물건을 뜻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이상적으로 설계된 기계가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덧붙여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뇌가 어설픈 것이 아니라,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한 개체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관점이다. 몸이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대신 지능이라는 유연한 도구가 발달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진화생물학계에서는 이 두 관점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다. 진화는 완벽한 설계자처럼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고, 주어진 자원 안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찾아 나간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 결과물이 지금 인간의 뇌라는 것이며, 그 과정 자체가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진화적 몸부림이었다는 해석이다.


태어날 때는 원숭이보다 뒤처지는 이유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신생아 발달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미성숙한 뇌를 갖고 태어난다. 발달인류학계에서는 이를 ‘조성성(altriciality)’이라고 부르는데, 태어날 때 몸과 뇌가 덜 발달되어 있어서 부모의 돌봄에 크게 의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이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 인간 신생아는 성인 뇌 크기의 약 25퍼센트에서 27퍼센트 수준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여러 연구의 공통된 결과다.
  • 침팬지 신생아는 성인 뇌 크기의 약 36퍼센트에서 40퍼센트 수준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비교 연구의 보고다.
  • 붉은털원숭이 같은 마카크는 성인 뇌 크기의 약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수준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학계의 관찰 결과다.

즉 태어나는 순간만 놓고 보면, 인간 아기의 뇌는 원숭이나 침팬지 새끼보다 훨씬 덜 완성된 상태라는 것이 이 분야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절대적인 뇌 무게로 봐도 인간 신생아는 평균 약 364그램, 침팬지 신생아는 평균 약 137그램으로 인간이 더 크지만, 이것이 성인 뇌 대비 비율로 환산되면 오히려 인간이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영장류에 속한다는 것이 발달생물학계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도록 진화했을까. 발달신경과학계는 이 미성숙함이 결함이 아니라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뇌 발달의 많은 부분이 태어난 이후, 즉 실제로 살아가야 할 환경에 노출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환경에 맞춰 신경회로가 직접 조율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뇌를 갖고 태어나는 대신, 태어난 뒤에 마주치는 세상에 맞춰 뇌를 실시간으로 다듬어 가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이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클루지, 즉 완벽한 사전 설계 대신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계속 조정해 나가는 방식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신경과학계가 수정한 삼위일체 뇌 이론

판단 실수를 설명할 때 흔히 도마뱀 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이론은 1960년대에 신경과학자 폴 매클린이 처음 제안했다. 파충류 뇌 위에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 뇌가 얹히고, 그 위에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순서대로 덮였다는 이른바 삼위일체 뇌 모델이다.

이 이론은 칼 세이건의 저서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하지만 진화신경과학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 모델을 계속 반박해 왔고, 현재는 학계 대부분이 이를 신화로 분류한다. 파충류와 포유류는 조상과 후손 관계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 관계라는 것이 비교신경과학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감정을 처리하는 구조와 대뇌피질에 해당하는 부위는 파충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척추동물이 이미 갖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신 신경과학 연구는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뇌는 층층이 쌓인 게 아니라, 한정된 두개골 공간과 에너지 안에서 여러 부위가 자원을 나눠 쓰며 동시에 균형을 맞춰 왔다는 것이 최근 비교 연구가 제시하는 결론이다. 비유는 수정됐지만, 뇌가 완벽한 설계 없이 타협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통찰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오류가 아니라 불일치, 심리학계의 해석

심리학계에서는 판단 실수 대부분을 오류가 아니라 불일치로 설명한다. 뇌가 고장 난 게 아니라, 그 기제가 만들어진 환경과 지금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고칼로리 음식을 갈망하는 본능은 음식이 희귀하던 시절에는 생존 전략이었지만, 편의점이 골목마다 있는 지금은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 이 이론의 대표적 사례다.

이 관점은 태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내 의지가 약해서라는 자책 대신, 내 뇌가 다른 시대에 맞춰져 있어서라는 자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책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자각은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 이 이론이 제시하는 실천적 함의다.


진화생물학이 설명하는 무작위 안의 질서

진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계는 이 설명이 절반만 맞다고 지적한다. 유전자 변이 자체는 정말 무작위로 일어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미래를 예측하지도 목표를 갖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그 변이 중 무엇이 살아남을지를 정하는 자연선택은 전혀 무작위가 아니라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핵심 설명이다. 살아남기 유리한 특성은 체계적으로 다음 세대에 남고, 불리한 특성은 체계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무작위한 재료와 질서 있는 필터가 함께 작동한 결과가 지금의 생명체라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다.

다만 학계는 이 질서를 목적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자연선택에 질서가 있다는 것과, 진화가 어떤 결과를 미리 겨냥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살아남기 유리한가만을 따질 뿐, 먼 훗날의 목표를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일관된 입장이다.


무작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생물학계가 말하는 무작위는 방향이 없는 사건이다.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날 때 그 변이를 원하거나 의도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세포도 개체도 그 무엇도 그 변이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무작위에는 애초에 선택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이 이론의 전제다.

반면 신앙의 관점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워 놓은 큰 방향, 즉 섭리라는 질서 안에서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잠언 16장 33절은 이렇게 말한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결정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사람은 자기 손으로 직접 제비를 던진다. 그 행동은 진짜 사람의 것이고, 사람이 책임져야 할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더 큰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이 전하는 메시지다.

성경에는 이 구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또 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해서 그를 노예로 팔았다. 이것은 형들이 스스로 저지른 나쁜 선택이었고, 그들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훗날 형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형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동시에 참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23절도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이루어졌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저지른 행위로 명시된다는 점에서 이 구조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사회학이 설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문화와 기술은 생물학보다 훨씬 빠르게 변한다.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는 이 속도 차이가 사람마다 변화에 반응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설명하며, 이를 다섯 단계로 정리했다.

수용자 유형전체 비율특징
혁신가2.5%위험을 감수하고 가장 먼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초기 수용자13.5%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며 다음 계층의 기준이 된다
초기 다수34%신중하게 관찰한 뒤 뒤따라 수용한다
후기 다수34%회의적이며 다수가 움직인 뒤에야 따라간다
지각 수용자16%전통과 익숙함을 우선시하며 가장 늦게 수용한다

이 다섯 단계의 이질성이 없다면 문화와 기술이 사회 전체에 균일한 속도로 퍼져나가, 적응 지연이라는 현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 이론의 함의다. 코딩 열풍이 불면 초기 다수와 후기 다수는 그 유행을 따라잡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 코딩 언어와 플랫폼을 처음 설계한 혁신가는 이미 유행이 오기 훨씬 전에 판을 짜 놓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분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스템을 배우는 사람과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한다. 배우는 사람은 이미 정해진 규칙 안에서 최적화를 하고, 만드는 사람은 규칙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 이 구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이다.


물리학 시뮬레이션이 보여준 운칠기삼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조건은 순수한 재능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자원과 관계망 안에 놓여 있었는가라는 우연적 요소가 크게 개입한다는 것이 사회과학 연구의 지적이다. 이 지점에서 운칠기삼이라는 옛말이 다시 떠오른다. 운이 일곱, 재주가 셋이라는 이 표현은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패의 상당 부분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에 좌우된다는 뜻으로 전해져 왔다.

이 통찰은 물리학자들의 시뮬레이션 연구로도 뒷받침된다. 재능이 정규분포를 이루는 가상의 인물들에게 무작위로 행운과 불운의 사건을 겪게 한 이 연구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은 최고 재능자가 아니라 평균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더 많은 행운을 만난 사람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100회 시뮬레이션에서 최고 성공자는 평균 성과자보다 약 650배 높은 성취를 기록했는데, 연구진은 이것이 순전히 더 많은 행운의 사건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 연구가 진짜 강조하는 지점은 이것이다. 재능은 최고 수준의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재능이 전혀 없으면 애초에 행운이 와도 그것을 성과로 전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행운이 와도, 그것을 활용할 능력과 방법을 모르면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해석이 여기서 가능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때가 기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래된 통념과 학계가 밝힌 진실

구분오래전에 믿었던 것현재 학계가 제시하는 설명
뇌 구조파충류 뇌 위에 포유류 뇌, 대뇌피질이 순서대로 쌓였다여러 부위가 자원을 나누며 동시에 균형을 맞춰 진화했다는 것이 최신 연구의 설명이다
태어날 때 지능인간이 가장 뛰어난 영장류이니 뇌도 가장 완성된 상태로 태어난다인간 신생아 뇌는 성인 뇌의 25~27%, 침팬지는 36~40%, 마카크는 60~70% 수준이라는 것이 발달생물학계의 관찰이다
판단 실수뇌가 어설프게 만들어진 결함이다오래된 환경에 맞춰진 정상 작동이 지금 환경과 어긋난 불일치라는 것이 심리학계의 해석이다
진화의 과정모든 것이 순전히 무작위로 흘러간다변이는 무작위지만 선택은 질서 있게 걸러낸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결론이다
무작위의 의미생물학적 무작위와 자유의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생물학적 무작위는 주체가 없고, 자유의지는 섭리 안의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신학과 과학이 구분된다
사회 변화누구나 비슷한 속도로 변화를 받아들인다혁신가 2.5%가 판을 짜고 나머지 97.5%가 단계별로 뒤따른다는 것이 확산 이론의 설명이다
성공의 조건재능이 가장 크게 좌우한다재능은 필요조건일 뿐,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는 운이 결정적이라는 것이 시뮬레이션 연구의 결과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몫

뇌의 타협도, 진화의 질서도, 시대의 속도 차이도, 운의 크기도 개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학계의 설명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이다. 심지어 태어나는 순간의 뇌조차 원숭이보다 덜 완성된 채로 시작한다는 것이 발달생물학계의 관찰이다. 생물학적 무작위 앞에서 인간은 그저 그 결과를 물려받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신앙이 말하는 자유의지의 영역에서는 다르다. 사람은 자기 손으로 제비를 던지듯 오늘의 선택을 스스로 내리고, 그 선택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라는 결론에 이른다.

판단 실수를 하는 당신은 어설픈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덜 완성된 뇌를 갖고, 평생에 걸쳐 그 뇌를 세상에 맞춰 다듬어 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만이, 다음에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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