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두름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강박에서 오는 ‘엔트로피’다.
- 오버페이스는 뇌의 처리 용량을 초과시키고, 그 초과분은 필연적으로 ‘실수’와 ‘후회’가 된다.
- 홍익(弘益 가치 제공)을 목적으로 삼으면 경쟁이 사라지고, 창조의식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게 된다.
우리는 왜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가.
할 일이 너무 많아서일까?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그 어떤 것도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다.
‘서두름(Hurry)’이란 단순히 동작이 빠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간’이라는 외부 기준에 내 고유한 삶의 리듬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강박에서 오는 불안한 심리 상태다.
기준이 내 밖에 있을 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두르게 된다. 그리고 그 서두름은 삶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만의 속도’를 되찾기 위해, 서두름의 본질을 과학과 철학, 그리고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해부해 본다.

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1. 타인의 시계 vs 나의 시계
비교의 방향이 속도를 결정한다
우리가 조급함을 느끼는 순간은 대개 타인의 성취를 목격할 때다.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속도, 누군가의 소유.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가 시작되는 순간, 내 손목에 채워져 있던 ‘나의 시계’는 멈추고 ‘사회의 시계(Social Clock)’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시계는 가혹하다.
“이 나이엔 이 정도는 해야지”, “저 사람은 벌써 저만큼 갔는데”라는 알람이 끊임없이 울린다.
경쟁의 관점에서 세상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파이는 한정되어 있고, 남보다 1초라도 늦으면 내 몫은 사라진다고 믿는다. 이것이 결핍 마인드셋(Scarcity Mindset)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며, 편도체(Amygdala)를 활성화해 비상경보를 울린다.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쫓기는 기분’의 실체다.
이 지옥 같은 레이스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비교의 축을 돌리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순간, 경쟁자는 사라지고 ‘성장’만 남는다.
어제보다 1% 나아진 나를 확인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나만의 성취다. 기준점이 내면으로 이동하면, 우리는 비로소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다.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헐떡이던 숨을 고르고, 나만의 호흡(Pace)으로 걷기 시작한다.
2. 오버페이스의 과학
서두름은 왜 필연적으로 실패하는가
나만의 속도를 잃고 서두르는 행위는 마라톤에서의 ‘오버페이스(Overpace)’와 정확히 같은 이치다.
운동 생리학적으로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서면, 근육은 산소를 태우는 효율적인 유산소 대사를 포기하고, 급한 대로 무산소 대사를 가동한다. 그 대가로 젖산이라는 노폐물이 쌓이고, 결국 근육은 멈춰 선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과학에는 ‘속도-정확성 트레이드오프’라는 법칙이 있다.
외부의 압박으로 서두르게 되면, 뇌는 정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결정 임계치’를 강제로 낮춰버린다.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질러!”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 상태는 시스템 내부의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를 급격히 높인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한 정보와 감정이 쏟아져 들어오면, 내면의 질서는 붕괴하고 그 무질서가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 바로 ‘실수(Mistake)’다.
서두르다 저지른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1분을 벌려다 10분을 잃는 ‘시간 부채’를 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가는 것이 물리학적으로 가장 빠른 길이다.
3. 목적의 전환
가지려는 자는 쫓기고, 주려는 자는 걷는다
서두름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욕망의 방향’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세상에서 ‘가져오려(Taking)’ 할 때, 나는 쫓길 수밖에 없다. 가져와야 할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경쟁자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적을 ‘베푸는 것(Giving)’으로 바꾸면 상황은 역전된다.
이것은 월리스 와틀스가 말한 ‘경쟁 평면’에서 ‘창조 평면’으로의 이동이다. 내가 세상에 가치를 제공하고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나는 경쟁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만들어낼 가치는 세상에 없던 것이며, 그 원천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씨앗을 심고 싹이 트지 않는다고 땅을 파헤치며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자연의 법칙(인과율)을 믿고 기다린다.
창조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심은 가치(원인)가 분명하다면, 결과(부와 성취)는 필연적으로 따라옴을 안다.
‘감사’는 이 믿음의 증거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이 과정에서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마음에는 조급함이 깃들 틈이 없다.
4. 좁은 문과 비즈니스
황금률이 만드는 진짜 성공
이 원리는 비즈니스와 커뮤니티 운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좁은 문’은 단순히 구원의 문을 넘어, 이 땅에서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이 걷는 길이다.
넓은 문은 쉽다.
남들이 다 하는 인기 키워드를 쫓고, 자극적인 트렌드를 따라가며, 당장의 트래픽을 사냥(Hunting)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곳은 혼잡하다. 서로 비슷비슷한 것들끼리 소음을 내며 경쟁한다. 사람들에게 억지로 맞추려다 보면 나만의 방향성(Identity)은 사라지고, 블로그나 커뮤니티는 정체성 없는 잡화점이 된다.
반면 좁은 문은 ‘가치 제공(홍익인간)’의 길이다.
남들이 귀찮아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성 있는 통찰을 나누는 길이다. 이 길은 처음엔 외롭고 느려 보인다.
하지만 “가치를 받으려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급부를 제공해야 한다”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 이 길을 걷는 자는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는 ‘황금률(Golden Rule)’을 따르면, 억지로 모으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인다.
이것은 사냥이 아니라 농사(Farming)다. 나의 철학과 진심(주파수)에 공명하는 ‘진짜 팬’들이 모여들고, 그들과 함께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결론: 창조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결국 서두른다는 것은 “나는 이 상황을 통제할 힘이 없다”는 무의식의 고백이다.
반대로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언제든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창조자의 확신이다.
지금 마음이 급하다면, 잠시 멈춰 질문해야 한다.
- 나는 지금 남의 시계를 보고 있는가, 나의 시계를 보고 있는가?
- 나는 지금 뺏으려 하는가, 주려 하는가?
창조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멈추지 않을 뿐이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어제의 나를 넘어서며,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심는 사람. 그 고요한 걸음만이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높이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