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생각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는 해독제

1. 뇌의 유일한 존재 목적은 복잡하고 적응적인 움직임을 생성하는 것이다.
2. 움직임을 멈춘 순간, 뇌는 유지 비용이 비싼 사치품이 되어 스스로 소화된다.
3. 엔트로피(무질서)로 가득 찬 불안을 잠재우는 해독제는 사색이 아닌 행동이다.



생각하는 갈대? 아니, 움직이는 기계 (Why)

데카르트의 오류와 현대인의 비극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유명한 명제는 수세기 동안 인류를 지배해 왔다. 우리는 뇌가 고차원적인 사유, 철학, 이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거대한 착각이었다.

현대인이 겪는 대부분의 정신적 고통 우울, 불안, 끊임없는 잡념은 바로 이 착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미친 듯이 걱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Entropy)의 관점에서 볼 때, 닫힌계(Closed System) 안에서의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육체라는 출구 없이 뇌 안에서만 맴도는 신호는 정보의 무질서, 즉 ‘정신적 엔트로피’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뇌는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기관이 아니다. 뇌는 철저하게 ‘움직이기 위해’ 설계되었다.


멍게가 자신의 뇌를 먹어치우는 충격적인 이유

이 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생명체가 바로 멍게(Sea Squirt)다. 바다를 유영하던 유충 시절의 멍게는 뇌(신경절)와 척삭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물살을 예측하고 먹이를 찾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당한 바위에 붙어 ‘고착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멍게는 더 이상 복잡한 판단이나 움직임이 필요 없게 된다. 이때 멍게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충격적이다.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스스로 소화시켜 에너지원으로 써버리는 것이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서늘한 통찰을 던진다. 움직임이 사라지면, 뇌는 더 이상 생존 필수품이 아니라 값비싼 사치품으로 전락한다. 뇌는 전체 체중의 2%밖에 안 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독식하는 ‘고비용 기관’이다.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에게 이런 고비용 기관은 진화적으로 도태되어야 마땅한 비효율일 뿐이다.



움직임이 없다면 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How)

예측 기계로서의 뇌: 대니얼 월퍼트의 통찰

신경과학자 대니얼 월퍼트(Daniel Wolpert)는 “뇌의 존재 이유는 오직 움직임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여기서 말하는 움직임은 단순한 근육의 수축이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정교한 예측(Prediction)과 오차 수정’의 과정이다.

우리가 걷거나 달릴 때, 뇌는 단순히 다리에 신호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발이 지면에 닿을 때의 충격, 무게 중심의 이동, 시야의 흔들림을 미리 시뮬레이션한다. 월퍼트 교수가 설명한 “자신이 자신을 간지럼 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뇌는 내가 나를 만질 때 발생할 감각 정보를 미리 예측하고 상쇄시켜 버린다. 즉, 뇌는 끊임없이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기계이며, 그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오직 ‘성공적인 움직임’을 위해서다.


엔트로피를 낮추는 유일한 방법: 시스템을 개방하라

다시 물리학적 관점으로 돌아와 보자. 나는 평소 자기계발의 핵심을 ‘내부의 무질서(Entropy)를 외부의 질서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해 왔다.

뇌가 움직임을 멈추고 정보 처리(생각)만 계속하면, 뇌 내부의 신경 회로는 과열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가 활성화되며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것이 바로 뇌 내부의 엔트로피가 극대화된 상태다.

이때 우리가 몸을 움직이면, 뇌는 강제적으로 모드를 전환한다. ‘예측하고 수행하는 모드’, 즉 중앙 집행 네트워크(CEN)로 에너지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복잡한 연산 능력을 ‘내면의 불안’을 씹어먹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을 극복’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움직임은 뇌라는 닫힌계를 열어젖혀, 에너지를 외부로 흐르게 만드는 행위다.


왜 고민만 하는 것은 자해인가?

현대 뇌과학의 거장 칼 프리스턴(Karl Friston)이 주창한 ‘자유 에너지 원리(Free Energy Principle)’는 뇌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틀을 제공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생명체로서 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다. 바로 ‘예측 오차(Prediction Error)와 놀라움(Surprise)’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뇌는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모델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한다. 이때 뇌가 예측한 것과 실제 감각 입력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면,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오차’를 줄이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1. 지각(Perception) 수정: 내 생각을 바꿔서 현실을 합리화하거나 재해석하는 것.
  2. 행동(Action): 내가 직접 움직여서 현실을 내 예측에 맞게 바꿔버리는 것.

문제는 우리가 책상 앞에 앉아 ‘고민만 할 때’ 발생한다. 뇌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시뮬레이션을 돌리지만(예측),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현실은 단 1mm도 변하지 않는다. [예측]과 [현실] 사이의 거대한 오차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비싸다: 에너지 효율의 역설

우리는 흔히 “움직이면 피곤하니까, 앉아서 전략을 짜는 게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틀린 계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회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는 뇌 전체 에너지의 60~80%를 기본적으로 잡아먹는 하마와 같다. 여기에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더해지면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며 뇌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해 보자. 닫힌 계(Closed System) 내부에서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순환하면, 그 시스템의 무질서도(엔트로피)는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지 않는 뇌는 닫힌 방과 같다. 그 안에서 생각들은 서로 엉키고 충돌하며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반면,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순간 뇌는 ‘개방계(Open System)’로 전환된다. 내부의 에너지가 외부의 물리적 운동으로 치환되어 빠져나간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걱정은 에너지 절약이 아니라, 가장 비효율적이고 값비싼 ‘대사 비용(Metabolic Cost)’을 치르는 행위다.

상태오래된 뇌 (기저핵/소뇌)새로운 뇌 (전두엽/신피질)결과
가만히 앉아 있기할 일이 별로 없음 (지루함)“움직이지 마”라고 억제하느라 에너지를 씀뇌가 경직됨
산책 중“걷기 모드” 실행 (신남)억제할 필요가 없음 (자유로움)생각이 자유롭게 흐름



시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 없다

완벽주의는 진화적 거짓말이다

우리는 종종 “준비가 100% 되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다짐한다.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해서”, “정보가 완벽하지 않아서”라는 핑계로 행동을 미룬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볼 때 “완벽해지면 행동하겠다”는 말은 “보지 않고 다 본 뒤에 눈을 뜨겠다”는 말과 똑같은 모순이다.

행동(Action)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Sensor)’다. 어두운 방의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려면(완벽해지려면) 일단 손을 뻗어 벽을 더듬고 스위치를 켜야 한다(행동해야 한다).

현대인이 겪는 ‘분석 마비’는 완벽을 행동 ‘전’ 조건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완벽은 엉성한 행동을 저지른 ‘후’에 얻어지는 데이터로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결과값’이다. 완벽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만 완벽(정보)에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이 ‘인식적 행동(Epistemic Action)’의 핵심이다.


용기의 재정의: 시작할 때가 아니라 수습할 때 써라

많은 자기계발서가 “시작할 용기를 가져라”고 말하지만, 사실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거창한 용기가 아니다. 그저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가벼운 ‘호기심’ 혹은 기계적인 ‘테스트 마인드’면 충분하다.

진짜 용기는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필요하다. 행동을 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오차(실패, 비난, 예상 밖의 결과)가 발생한다. 이때 우리의 뇌는 “도망쳐! 숨어!”라고 비명을 지른다. 바로 이 순간, 도망치지 않고 그 오차를 직시하여 수습하고 수정하는 힘, 그것이 진짜 용기다.

용기는 시작을 위한 연료가 아니라, ‘사후 처리(Post-processing)’를 위한 수리 키트다. 시작할 때부터 용기를 다 써버리니, 정작 문제가 터졌을 때 수습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결론: 당신의 뇌를 위한 처방전

멍게가 움직임을 멈추고 뇌를 소화해버렸듯, 우리 뇌도 행동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생각의 늪에 빠져 엔트로피(불안)가 치솟을 때,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지 마라.

대신 당신의 뇌에게 가장 확실한 신호를 줘라.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거나, 미뤄뒀던 프로젝트의 첫 문장을 대충이라도 써라. 몸이 움직이고 결과값이 나오는 순간, 뇌는 비로소 안심한다. “아, 우리가 이 문제를 통제하고 있구나.”

불안할 때 스스로에게 말하라. “지금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건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데이터(행동)가 부족해서다.” 행동은 결단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다. 일단 움직여라. 완벽은 그 뒤에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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