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인사이트 요약
- 식물의 침묵: 식물도 인간과 똑같은 유전자 스위치(TOR)를 통해 굶주림에 반응하며, 늙은 잎을 태워 어린 잎을 살리는 숭고한 희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진화의 기억: 인간에게 ‘배부름’은 찰나였고 ‘결핍’이 영원했다. 우리가 단식을 하는 건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야생의 감각을 시뮬레이션하는 행위다.
- 최후의 보루: 갱도 붕괴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자가포식은 단순한 건강법이 아니다. 뇌와 심장을 지키기 위해 근육을 태우는, 생과 사를 가르는 냉혹한 생존 엔진이다.

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풍요가 생명에게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무질서도)의 법칙은 우주의 모든 시스템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외부 에너지를 섭취해 내부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존재다. 그렇다면 외부 에너지가 차단되었을 때, 생명은 어떻게 그 필연적인 붕괴를 막아내는가? 인간과 식물, 그리고 극한의 생존 상황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알고리즘, 자가포식(Autophagy)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1. 식물의 침묵: 생존을 위한 최초의 물류 시스템
많은 이들이 묻는다. “사람이 굶으면 자가포식을 하는데, 식물도 그럴까?” 답은 명확하다. 식물은 사람보다 더 치열하게, 더 처절하게 자가포식을 수행한다.
생명의 공통 스위치, TOR
놀랍게도 식물과 인간은 분자 단위에서 동일한 생존 스위치를 공유한다. 바로 TOR(Target of Rapamycin)라는 단백질 복합체다.
- 풍요로울 때: 영양분이 충분하면 TOR가 켜져서 성장을 명령한다.
- 결핍될 때: 영양 공급이 끊기면 TOR는 즉시 꺼지고, 세포 내 청소부인 ‘ATG 유전자군’이 깨어난다.
이 메커니즘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진핵생물이라면 누구나 가진 태고의 유산이다.
잎을 태워 씨앗을 지키다
식물에게 단식은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환경이 강요하는 결핍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빛이 차단되어 탄소(에너지)가 부족해지거나, 토양에 질소(비료)가 고갈될 때 식물은 결단을 내린다.
그들은 가장 먼저 오래되고 늙은 잎의 단백질을 스스로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분해된 영양분(아미노산)은 줄기를 타고 이동해,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 잎이나 생명의 정수인 씨앗으로 수송된다.
자신을 분해하여 다음 세대를 살리는 것.
식물의 자가포식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전체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 국지적인 소멸을 받아들이는 고도로 발달된 내부 물류 시스템이다. 잎이 시드는 것은 병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쟁의 결과다.
2. 잃어버린 기억: 식물과 인간의 다른점과 공통점
시선을 돌려 인간을 보자. 현대인은 의지적으로 ‘간헐적 단식’을 수행한다. “사람은 의지로 굶지만 식물은 강제로 굶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결핍이 기본값(Default)이었던 역사
수십억 년의 진화 역사에서 인간에게도 ‘배부름’은 기적 같은 예외 상황이었다. 원시 인류에게 사냥 실패와 혹독한 겨울은 일상이었고, 굶주림은 상수였다. 즉, 우리 몸의 유전자는 이미 수만 년 전부터 ‘강제적 단식’ 상태에 최적화되어 설계되었다.
현대인이 건강을 위해 수행하는 단식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그것은 ‘냉장고와 마트’라는 문명의 이기가 지워버린 ‘야생의 결핍’을 뇌(의지)로 시뮬레이션하는 복고적 해킹이다.
갈라진 운명: 이동성(Mobility)의 차이
그렇다면 식물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움직일 수 있는가’에 있다.
- 식물(정주성): 도망칠 수 없다. 가뭄이 오면 그 자리에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식물의 자가포식은 ‘재활용(Recycling)’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내부 자원을 100% 가까이 회수하여 순환시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 인간(이동성): 굶주리면 식량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자가포식은 ‘연료 확보’에 특화되었다. 사냥을 나갈 힘을 얻기 위해, 비효율적인 세포 소기관과 지방을 태워 즉각적인 에너지(케톤)를 만든다.
우리는 식물처럼 뿌리박고 견디는 대신, 움직여서 생존하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그 근저에 깔린 ‘결핍에 대한 공포’와 ‘내부를 태워 생존하려는 본능’은 완벽하게 동일하다.
3. 최후의 보루: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작동하는 엔진
이제 가장 극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문명의 보호막이 사라진 순간, 예를 들어 갱도 붕괴로 갇히거나 무인도에 조난당했을 때다. 이때 자가포식은 단순한 건강 관리법이 아니다. 그것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지키는 최후의 비상 발전기가 된다.
닫힌계(Closed System)의 공포
외부에서 물 한 모금, 밥 한 톨 들어오지 않는 상황. 인체는 열역학적으로 완벽한 ‘닫힌계’가 된다. 에너지 유입이 없으니 엔트로피(무질서)는 급격히 증가하고, 죽음(평형 상태)을 향해 치닫는다. 이때 유일하게 역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자가포식이다.
냉혹한 트리아지(Triage) 시스템
극한 상황에서 우리 몸은 냉혹한 사령관으로 변모한다. 살릴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우선순위(Triage)가 가동된다.
- 1순위 (쓰레기 소각): 가장 먼저 독성 단백질, 염증 물질, 망가진 세포 소기관을 태운다. 평소라면 암이나 치매가 되었을 쓰레기들이 귀중한 연료가 된다.
- 2순위 (조직 희생): 그다음은 덜 중요한 근육과 지방이다.
- 최후의 목적 (뇌와 심장 보호): 이 모든 파괴의 목적은 단 하나, ‘뇌’와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기아 상태에서도 뇌의 자가포식은 가장 늦게, 가장 제한적으로 일어난다. 몸은 팔다리의 근육을 녹여서라도 의식을 유지하려 한다. 조난자가 물만 마시고 수십 일을 버티는 기적은 정신력이 만든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갉아먹어서라도 중추 신경을 지키려는 우리 몸의 처절한 생존 알고리즘이 만든 결과다.
결론: 야생의 회복, 비움으로 채우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문명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은 단순히 ‘배고픔’이라는 고통뿐이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배고픔과 함께 내 몸을 스스로 정화하고, 위기의 순간에 시스템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TOR 스위치가 24시간 켜져 있는 현대인의 몸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과 같다. 쓰레기는 쌓이고, 기계는 과열된다. 우리가 간헐적 단식을 통해 의도적인 공복을 만드는 것은, 이 과열된 문명 속에서 잠시나마 ‘태고의 야생’을 회복하는 의식(Ritual)이다.
식물이 묵묵히 잎을 떨궈 씨앗을 살리듯, 갱도 속의 생존자가 근육을 태워 뇌를 살리듯, 우리 또한 스스로를 비워냄으로써 더 본질적인 생명력을 채울 수 있다.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말라. 뱃속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는 에너지가 없다는 비명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몸이 무질서해진 세포들을 태워, 다시금 정교한 질서를 세우고 있다는 가장 건강한 기계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