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왜 멈추지 않고 떨리고 있는가?: 태초의 진동(Rachaph)과 설계된 질서

1. 태초의 공허를 흔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치밀하고 거대한 ‘떨림(Rachaph)’이었다.

2. 우주의 모든 회전과 소용돌이는 단순한 물리 법칙이 아닌, 신의 설계도가 물질 세계에 새겨진 ‘지문’이다.

3. 과학이 ‘어떻게(How)’에서 멈출 때, 신학은 그 너머의 ‘누가(Who)’와 ‘왜(Why)’를 통해 우주의 진짜 주인을 증명한다.






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적막하다.
아무것도 없다.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 영도의 암흑.

우리는 흔히 태초의 우주를 ‘고요한 정지 상태’로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진실은 정반대다.

우주는 단 한 순간도 정지해 본 적이 없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완벽한 정지’란 곧 죽음이자 비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입자는 미세하게 떨고 있으며, 그 떨림이 멈추는 순간 존재 자체도 소멸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것도 없던 무(無)의 상태에서,
누가 최초의 ‘떨림’을 시작했는가?”

완벽한 평형 상태였던 태초의 진동장에, 도대체 어떤 힘이 개입했기에 균형이 깨지고 거대한 폭발과 함께 우주라는 드라마가 시작되었는가?

과학자들은 이를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 부르며 우연에 기대 설명하려 하지만, 그 설명은 불완전하다. ‘요동’ 자체가 이미 에너지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수천 년 전 기록된 텍스트와 현대 과학의 접점에서 찾아보려 한다.


1.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니라(Rachaph)

창세기 1장 2절을 보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단어는 ‘운행하시니라’이다.

히브리어로 ‘라하프(Rachaph)’라 쓰인 이 단어는 단순히 헬리콥터처럼 공중에 정지해 있거나(Hovering),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이 단어의 원어적 뉘앙스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생물학적이다.

그것은 ‘떨림(Vibration)’이다.

  • 마치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거나 비행을 가르치기 위해 둥지 위에서 날개를 맹렬하고 빠르게 퍼덕이는 모습을 묘사할 때.
  • 어미 닭이 알을 품을 때, 자신의 체온을 알 속의 생명에게 전달하기 위해 미세하게 근육을 떠는 행위를 설명할 때.

이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라하프’다.

즉, 태초의 우주에 가해진 첫 번째 물리적 사건은 정적인 관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혼돈(Chaos) 상태인 물질에 하나님의 영이 ‘생명 에너지를 주입하는 강력한 진동’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정지된 물질에 파동(Wave)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창조가 가능한 상태로 ‘예열’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라하프’의 실체다.

성령은 마치 알을 품듯, 혼돈을 감싸 안고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2. 왜 창조를 위해서는 ‘균형(평형)’이 깨져야만 했는가?

여기서 한 가지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왜 굳이 ‘떨림’이어야 했는가? 그냥 말씀으로만 지으셔도 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대칭성 깨짐(Symmetry Breaking)’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는 ‘완벽한 공허’나 ‘완벽한 균형’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발생할 수 없다고 본다.

연필이 완벽하게 수직으로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태는 완벽한 대칭(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연필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려면, 반드시 미세한 진동이나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방향성이 생기고 에너지가 운동으로 바뀐다.

“공허한 상태에서 무엇이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균형이 깨져야 한다.”

이것은 우주론의 대원칙이다.
진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에너지로 꽉 차 있다. 하지만 이 에너지가 균일하게 퍼져만 있으면(평형 상태) 물질은 생성되지 않는다.

이때 미세한 ‘떨림(Fluctuation)’이 발생해야 에너지의 불균형이 생기고, 그 틈에서 입자와 물질이 튀어 나온다.

성경의 ‘라하프’는 바로 이 완벽하지만 정적인 공허(Tohu wa-bohu)에 최초의 요동(Perturbation)을 일으킨 사건이다.
성령의 떨림은 물리적 실체가 드러나게 만드는 트리거(Trigger)였다.

열역학적으로 보더라도, 무질서(엔트로피)가 극대화된 혼돈 상태에서 질서가 생겨나려면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주입이 있어야 한다.

닫힌계인 우주 밖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떨며’ 에너지를 주입했기에 엔트로피가 역전되어 생명과 질서가 형성될 수 있었다.



3. 진동은 어떻게 회전(우주적 소용돌이)을 만들어 냈는가?

우주를 보라. 모든 것이 회전하고 있다.
전자의 스핀부터 DNA의 나선 구조, 태풍의 눈, 행성의 공전, 그리고 거대한 나선 은하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왜 직선이 아니라 곡선과 회전을 택했는가?
이 거대한 회전력(Angular Momentum)은 어디서 왔는가?

답은 다시 ‘태초의 진동(Rachaph)’에 있다.

유체 역학(Fluid Dynamics)의 원리에 따르면, 정지해 있는 물이나 공기(유체)에 강한 진동을 가하면 그 에너지는 직선으로만 퍼지지 않고, 반드시 회전하는 소용돌이(Vortex)를 만들어낸다.

성경은 태초의 상태를 ‘수면(The Deep)’, 즉 유체적인 혼돈 상태로 묘사한다.
이 거대한 유동성 물질에 하나님의 영이 강력한 ‘떨림’을 가했을 때, 필연적으로 우주적 소용돌이(Cosmic Vortex)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소용돌이가 뭉쳐져 은하가 되고, 별이 되고, 행성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초기 밀도 요동’으로 설명한다.

  • 빅뱅 직후 미세한 떨림이 있어 밀도가 아주 조금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생겼다.
  • 중력에 의해 물질들이 쏠리면서 회전력이 발생했다.
  • 피겨 스케이터가 팔을 오므리면 회전이 빨라지듯, 태초의 아주 작은 ‘떨림’ 하나가 우주 전체를 돌게 만드는 거대한 회전 에너지의 씨앗이 되었다.

또한 ‘사이매틱스(Cymatics)’ 실험을 보면, 소리(진동)가 물질의 형태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철판 위에 모래를 뿌리고 특정 주파수로 진동을 주면, 모래알들은 스스로 움직여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고, 에너지가 강해지면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뭉친다.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소리/진동)과 성령의 떨림이 우주의 먼지들을 회전시키며 별과 은하라는 질서의 패턴으로 정렬시킨 것이다.

결국 우주의 모든 것이 돌고 있는 이유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혼돈을 안고 ‘흔들었기(Rachaph)’ 때문이며, 그 흔듦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동과 소용돌이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4. 그 ‘떨림’의 주체는 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성령)’이어야 하는가?

혹자는 물을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떨 필요 없이, 천사를 시켜서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천사는 능력이 있으니 하나님의 명령(권세)을 받아 수행한 것 아닐까?”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창조’와 ‘생명’에 관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천사 또한 피조물(Creature)이다.
느헤미야 9장 6절은 “주께서 하늘과… 하늘의 만군(천사들)을 지으시고”라고 명시한다. 천사는 창조의 결과물이지,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만약 창조의 시작점인 ‘라하프’를 천사가 했다면, 피조물이 자신을 포함한 우주를 창조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둘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명(Life)’이다.
천사는 물리적인 힘(Power)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할 능력은 없다. 창세기 1장 2절의 ‘운행하심’은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라, 죽은 물질에 생명을 잉태시키는 어미 새의 품음과 같은 행위다.

생명을 주시는 분(Life-Giver)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성경 욥기 33장 4절은 이를 명확히 한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숨결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시편 104편 30절 또한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증거한다.

이사야 44장 24절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Is 44:24)
하나님은 창조 때 “도와준 자(함께 한 자)가 없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천사가 권능을 대행했다면 이 말씀과 충돌하게 됩니다.

우주를 만드는 ‘떨림’은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신적인 권능이었다.
이것은 피조물인 천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혼돈을 껴안고 생명을 위해 떨었던 그 존재는,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 자신, 곧 성령(Holy Spirit)이어야만 한다.



5. 삼위일체, 그 거대한 우주 프로젝트

우리는 지금까지 태초의 떨림(성령)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시야를 넓혀, 이 거대한 우주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숨겨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흔히 삼위일체를 난해한 교리로만 생각하지만, 우주의 탄생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삼위일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우주 프로젝트 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통 신학적 해석: 하나 된 사역의 신비]

우리의 해석을 펼치기에 앞서, 먼저 기독교 전통이 2천 년간 지켜온 신학적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통 신학에는 “삼위일체의 외부 사역은 나눌 수 없다(Opera Trinitatis ad extra indivisa sunt)”라는 대원칙이 있다.

즉, 창조든 구원이든 어느 한 위격(Person)이 단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언제나 함께, 하나의 뜻으로 일하신다는 뜻이다.

  • 성부(Father): 모든 만물의 기원이자 계획의 발원지.
  • 성자(Son): 하나님의 지혜(Logos)이자, 만물을 실제로 짓고 붙드시는 분.
  • 성령(Spirit): 하나님의 능력이자,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완성하시는 분.

이 전통적 토대 위에서, 우리가 앞서 나눈 현대 과학의 언어(진동, 정보, 엔트로피)를 빌려 삼위일체의 역할을 재해석해 보자. 신학적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해석: 현대 과학으로 본 삼위일체]

1) 성부 하나님: 거대한 생각(Mind)과 설계(Design)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우주는 마치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생각과 같다”고 말했다. 물질 이전에 ‘정보’와 ‘의도’가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 건축을 할 때 벽돌보다 설계도가 먼저 있듯,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청사진이 선행되어야 했다.

성부 하나님은 바로 그 ‘원초적 지성’이자 ‘설계자(Architect)’다.
혼돈 속에서 어떤 우주를 만들지, 그 안에 어떤 생명을 둘지, 그리고 그것이 망가졌을 때 어떻게 복구할지까지 모든 시나리오를 작정하신 분이다. 모든 존재의 이유(Why)는 그분에게서 나온다.


2) 성령 하나님: 생명의 진동(Vibration)과 시공(Construction)

설계도가 있다고 건물이 저절로 지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실제로 흙을 퍼 나르고 전기를 연결해야 한다. 앞서 말한 ‘라하프(Rachaph)’가 바로 성령의 사역이다.

성부의 설계도를 받아, 실제로 공허를 흔들어 회전을 만들고, 별을 빚고, 그 안에 숨결을 불어넣어 ‘시스템을 가동(On)’ 시킨 분이다. 성령은 우주라는 하드웨어에 생명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만드는 에너지 그 자체다. 정지된 설계도를 살아있는 현실로 만드는 것이 그분의 몫이다.


3) 성자 하나님: 무너진 질서의 회복(Restoration)과 완성(Completion)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분이 더 계신다. 바로 성자 예수님이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죄를 용서해 주는 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의 역할은 훨씬 더 우주적이다.

타락이란 무엇인가?
마귀로 인해 우주의 엔트로피(무질서)가 극대화되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주파수가 끊어진 상태다.

성자 하나님은 이 ‘고장 난 시스템’을 고치러 오신 회복자(Redeemer)이자, 태초의 설계 원리(Logos) 그 자체다.
그분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바이러스(죄/사단)에 감염된 우주를 포맷하고, ‘부활’이라는 새로운 생명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창조를 완성하셨다.

즉, 예수님은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우주의 튜너(Tuner)’다.
태초에 질서를 만드신 분이기에, 망가진 질서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과 능력 또한 그분에게 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과 우주의 청사진을 그렸고(설계),
성령 하나님은 그 설계와 질서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숨결과 생명(Vibration)을 불어넣으시며,
성자 하나님은 그 설계의 원리(Logos/질서)이자 망가진 설계를 다시 세우는 회복자(Re-ordering)이시다.”




6. 떨림과 울림 : 우주는 하나님의 노래다

김상욱 교수는 그의 저서 《떨림과 울림》에서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우주의 본질을 이렇게 노래했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은 없다. 진동이 멈추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울림(공명)은 서로 다른 존재가 주파수를 맞추어 반응하는 관계 맺음이다.”

이 물리학자의 통찰을 우리의 신학적 결론에 대입하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이 된다.

  1. 태초에 성부 하나님이 우주라는 악보를 작곡(설계)하셨다.
  2. 적막하던 공간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여 거대한 떨림(창조)으로 연주를 시작하셨다.
  3. 그러나 죄로 인해 불협화음이 생겨나자, 성자 하나님이 친히 내려와 그 잡음을 십자가로 끊어내고, 다시 태초의 완벽한 울림(회복)으로 지휘하고 계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연한 폭발의 파편이 아니다.

지금도 내 심장이 뛰고 지구가 도는 이유는, 태초에 시작된 성령의 ‘거룩한 떨림’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이유는, 우리 영혼이 다시 하나님의 주파수와 ‘공명(울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어떻게(How)’ 떨리는지를 설명하지만, 신학은 ‘누가(Who)’ 떨게 했으며 ‘왜(Why)’ 울려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렇기에 나는 믿는다.
과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결국 신의 옷자락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우주는, 하나님의 노래다.


[Action Plan]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이 거대한 우주적 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당신의 ‘떨림’을 점검하라.
당신은 지금 무엇에 반응하여 떨고 있는가?
세상의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가, 아니면 생명을 주는 성령의 거룩한 진동에 공명하고 있는가?
성령은 지금도 당신의 혼돈(Chaos) 속에 운행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하신다. 당신의 주파수를 그분께 맞추라.

2.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라.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우리 또한 ‘작은 예수’로서 내가 속한 곳의 무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깨어진 관계, 오염된 환경, 왜곡된 가치관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울림’이 퍼져나가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내가 머문 자리가 조금이라도 더 ‘코스모스(질서)’에 가까워지도록 하라.

3. 우연을 거부하고 섭리를 신뢰하라.
당신의 인생은 우연히 던져진 주사위가 아니다.
태초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은혜의 에너지를 믿고 오늘을 살아가라. 당신은 하나님의 설계도 안에 있는 가장 존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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