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좀비들의 시간: 창조적 파괴와 회복에 대한 성찰

1. 개념은 벽돌이고, 이념은 그 벽돌로 지은 집의 설계도다.
2. 국가는 ‘강강술래’와 같아서, 믿음의 손을 놓는 순간 증발한다.
3. 고장 난 망치를 버리지 못하는 꼰대의 고집은, 지식의 빈곤이 빚어낸 실존적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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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1. 이념과 개념의 차이: 생각의 벽돌과 설계도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해상도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흔히 ‘개념’과 ‘이념’을 혼동하곤 한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는 첫 번째 단추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명확하다.

  • 개념(Concept): 사물을 정의하고 인식하는 기초 단위. “이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지식의 벽돌.
  • 이념(Ideology/Idea): 개념들이 모여 형성된 가치 체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나침반.

비유하자면, 개념이 ‘벽돌’이라면 이념은 그 벽돌로 지으려는 ‘집의 설계도’다.

벽돌(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다. ‘자유’, ‘평등’, ‘시장’ 같은 낱말 그 자체다.
하지만 설계도(이념)가 없으면? 벽돌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건축물이 아니다. 그저 바닥에 굴러다니는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자,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근거다.




2. 실재의 조건: 의자는 그냥 존재하지만, 국가는 믿음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념으로 만들어진 가장 거대한 창조물인 ‘국가’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국가는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념 속에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창조의 순서는 같다.
사람이 의자를 만들 때 상상 속에 먼저 그려 보듯, 국가 역시 ‘보이지 않는 생각(설계)을 현실로 끄집어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생존 조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갈린다.


물건 (예: 의자, 돌)

재료는 원자와 분자다. 이것은 인간이 다 사라져도 물리적으로 남아 있다. 내가 “이건 의자가 아니야”라고 믿어도, 걸어가다 부딪히면 아프다. 이것은 객관적 실재(Brute Facts)다. 엔트로피 외에는 무너뜨릴 힘이 없다.


국가 (예: 대한민국)

재료는 사람들의 믿음과 약속(상호주관성)이다. 이것은 제도적 실재(Institutional Facts)다. 인간이 사라지면 국가도 즉시 사라진다. 사람들이 “이 나라는 망했어”라고 믿으면 실제로 국가는 힘을 잃고 해체된다.

쉽게 말해, 국가 만들기는 마치 여러 사람이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것과 같다.

멈추지 않고 계속 돌고 있어야(믿고 행동해야) 그 원(국가)이 유지된다. 한두 명이 손을 놓거나 믿음을 거두면 그 형태는 순식간에 해체된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는 국가는 가짜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같은 공동체라고 상상(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실재하게 되는 강력한 창조물”이라는 뜻이다. 국가는 끊임없는 에너지(믿음)가 필요한 실재다.




3. 목적론적 죽음: 목적을 잃은 순간, 존재는 괴물이 된다

모든 존재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eleology)적 관점에서 보면, 목적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존재는 사실상 죽은 것이다.

망치의 목적은 ‘못을 박는 것’이다. 그런데 망치 자루가 부러진다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구가 제 기능을 할 때(Ready-to-hand)는 투명하게 느껴지지만, 고장이 나는 순간 비로소 거추장스러운 ‘사물(Present-at-hand)’로 우리 눈앞에 흉물스럽게 나타난다.

목적을 잃은 물건은 더 이상 ‘망치’가 아니다. ‘망치였던 나무와 쇠붙이 덩어리’로 격하(Downgrade)된다.

국가는 훨씬 더 심각하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보호’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목적)가 없는 국가는 거대한 강도 떼(Robber Bands)와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여기서 무서운 점은 이것이다.
목적을 잃은 국가는 단순한 ‘고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폭력 기구(괴물)로 변질된다. 목적에서 벗어나는 순간,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4. 좀비의 시간: 고장 난 것을 버리지 못하는 비극

문제는 현실에 ‘관성(Inertia)’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목적이 죽었는데도 껍데기만 살아서 움직이는 시간, 나는 이것을 ‘좀비의 시간’이라 부른다.

이는 마치 고장 난 TV를 버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둔 상태와 같다.

  1. 존재의 상태: 제도가 본질적인 생명력을 잃었음에도(죽음), 여전히 이름과 껍데기만 남아서 사람들의 삶을 규정한다.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데 “나는 TV야”라고 우기고 있는 상태다. (울리히 벡의 ‘좀비 카테고리’)
  2. 우리의 태도: “아깝거나, 익숙해서” 버리지 못한다. 시스템이 고장 난 걸 알면서도, 사라진 후의 무질서(Chaos)가 두려워 차라리 ‘고장 난 질서’를 붙들고 있는 제도적 관성에 빠진다.
  3. 결과: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가짜’들이 진짜 현실을 대체한다. 창고가 꽉 차면 새로운 물건(혁신)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진다. 좀비들이 산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좀비의 시간은 위험하다. 창고가 지저분해져서가 아니다.
“정작 필요할 때 꺼내 쓸 물건(작동하는 시스템)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위기가 닥쳐서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5. 꼰대의 심리학: 왜 과거의 망치를 놓지 못하는가

이 좀비들로 가득 찬 창고를 지키는 경비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흔히 ‘꼰대’라 부른다.

그들은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규칙(고장 난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심리학적으로 꼰대의 고집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고장 난 질서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방어 기제이자 지식의 빈곤에서 온다.


1. 매슬로우의 망치 (지식의 한계)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꼰대는 평생 ‘망치(과거의 경험)’라는 도구 하나만 훈련해 온 사람이다. 세상은 변해서 드라이버가 필요한데, 그는 드라이버를 쓰는 법을 모른다. 아는 게 망치뿐이라서, 복잡한 문제도 망치로 때려 박으려 한다. 대안을 몰라서 못 하는 것이다.


2. 기능적 고착 (뇌의 경직)

뇌가 늙으면 신경 가소성이 떨어져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기존의 틀을 깨는 것(Accommodation)이 힘들어진다. 그들의 굳어버린 뇌 속에서는 “TV = 방송 보는 기계”라는 공식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정말로 ‘다른 생각’을 할 뇌 용량이 부족한 상태일 수 있다.


3. 학습된 무기력 (실존적 공포)

새로운 툴을 배우려면 ‘초보자’가 되어야 한다. 평생 선배로 대접받아온 그들에게 ‘무식한 초보자가 되는 경험’은 죽기보다 싫은 공포다. 그래서 자신이 유일하게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거의 링’으로 사람들을 끌고 들어간다.

결국 꼰대란 “자신의 유통기한 지난 경험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것을 폐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악덕 상인”이다. 그 물건을 버리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도 함께 폐기될 것 같은 공포 때문이다.




6. 창조자의 시선: 미래의 기억으로 현재를 부수다

이 좀비의 시간을 끝내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창조자(Creator)’다.

세상에 없는 물건을 최초로 만드는 사람들(혁신가, 건국자)은 인간 차원에서 신의 창조 행위를 재연한다. 창조자의 시선에서 삶은 ‘목적(Why) → 탄생(How)’의 순서로 흐른다.

  • 역설적 인과율: 창조자에게는 미래(목적)가 과거(행동)를 결정한다.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이념’이 존재하고, 그 미래의 모습이 지금 나의 손을 움직이게 만든다. 마치 미래에서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 질료에 대한 투쟁: 창조란 나의 완벽한 상상(이념)을 저항하는 거친 재료(현실)에 강제로 새겨 넣는 투쟁이다. 물질은 저항하고 사람은 말을 듣지 않는다. 창조자는 이 저항을 뚫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 폐기의 권한: 창조자는 피조물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폐기한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 가치가 없다.”
이 선언은 잔인함이 아니라, 죽은 것을 매장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숭고한 결단이다.




7. 신의 설계도로 돌아가라: 회복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창조자의 시선(The Divine Perspective)에서 ‘목적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결국 회복이란 ‘최초의 설계도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당신은 우연이 아니다 (Origin)

세상의 물건이 목적 없이 생겨나지 않듯, 당신의 존재 또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창조주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세상(타인)에게 묻지 말고 당신을 설계한 창조자에게 물어라.


좀비의 시간을 청산하라 (Process)

기능이 다한 관습과 타인의 기대를 창고에서 과감히 폐기하라. 그것들은 네가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익숙한 과거(망치)를 버리고 빈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빈손이 되어야 새로운 도구를 쥘 수 있다.


너 또한 작은 창조자로 살아라 (Mission)

현실에 순응하는 자가 되지 말고, 너의 믿음과 상상으로 이 땅의 거친 재료들을 빚어 하늘의 뜻(이념)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실재) 하라.

지금 당장 당신의 영혼의 창고를 열어라. 그리고 물어라.
“이것은 지금 작동하고 있는가? 나의 목적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만약 대답이 ‘아니요’라면, 미련 없이 버려라. 파괴 없이는 창조도 없다.
그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진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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