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두 얼굴: 우주는 어떻게 무질서 속에서 생명을 잉태하는가

  1. 천문학적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우주가 무작위한 혼돈이 아닌, 미래를 품은 ‘코스모스(Cosmos)’이기 때문이다.
  2. 창조 이전의 혼돈과 우주 종말의 혼돈은 겉모습만 비슷할 뿐, 그 본질인 ‘에너지와 잠재력’에서 정반대다.
  3. 창조는 단순한 조립이 아니라, 어머니가 산고를 겪듯 에너지를 태워 질서를 빚어내는 ‘우주적 잉태’의 과정이다.

엔트로피의 역설: 우주는 어떻게 혼돈 속에서 생명을 잉태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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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사유(思惟)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억 광년 떨어진 별빛이 내 동공에 맺히기까지,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물리 법칙을 수행해 왔다.

우리는 수백 년 뒤의 일식을 예언하고,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존재를 계산해낸다. 이 경이로운 예측 가능성은 단 하나의 사실을 웅변한다.

이 우주는 제멋대로 굴러가는 주사위 놀음판이 아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 이면에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가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질서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엔트로피라는 무질서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 존재의 기원과 목적을 묻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다.




1. 예측의 근거: 우주는 왜 침묵하지 않고 말하는가

천문학이 성립할 수 있는 가장 큰 전제는 우주원리(Cosmological Principle)다. 내가 서 있는 지구의 물리 법칙이 100억 광년 밖 안드로메다은하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믿음이다.

만약 우주가 변덕스러운 신처럼 매 순간 규칙을 바꾼다면, 우리는 단 1초 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우주에 ‘인과율(Causality)’이라는 엄격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질서의 조율자, 중력

이 질서의 핵심에는 중력이 있다.
빅뱅 초기, 균일하게 퍼져 있던 가스들이 중력에 의해 뭉치며 별이 되고 은하가 되었다. 중력은 허공에 흩어질 뻔한 물질들을 붙잡아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 안에 ‘정보’를 새겨 넣었다.

덕분에 우리는 별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읽고,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물질의 역사를 읽는다.

우주는 카오스(Chaos)가 아니라, 누군가 정교하게 조율해 놓은 거대한 시계태엽처럼 작동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것이 이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라고 경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엔트로피의 방향: 필연적인 종말을 향하여

그러나 이 완벽해 보이는 질서에도 끝은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잔인하리만큼 명확하다.

“닫힌 계의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쓸모 있는 에너지’에서 ‘쓸모없는 에너지’로 끊임없이 변환된다. 뜨거운 커피가 결국 식어버리듯, 우주도 천천히 식어가고 있다.

과학이 그려내는 우주의 미래는 장엄하고도 쓸쓸하다.

  • 50억 년 후: 태양은 수소를 다 태우고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킬 것이다.
  • 100조 년 후: 우주의 모든 별이 꺼지고, 새로운 별이 태어나지 않는 암흑기가 도래한다.
  • 그 이후: 물질마저 붕괴하고 블랙홀조차 증발하여, 우주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차가운 공간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열적 죽음(Heat Death)이다.

모든 에너지가 균일하게 퍼져 더 이상 어떤 생명 활동도,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는 상태. 질서가 완전히 해체된 상태.

우주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무질서가 우주의 종착역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묻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은 어떠했는가? 시작도 종말처럼 무질서했는가?”




3. 두 가지 혼돈: 젖은 진흙과 마른 먼지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Tohu wa-bohu)”라는 구절과 마주한다.

태초의 혼돈과 종말의 혼돈. 둘 다 형태가 없고 어둡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그 본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것은 잠재력(Potential)의 차이다.


3-1. 창조의 혼돈 (시작): 꽉 찬 배터리 🔋

태초의 혼돈은 단순한 엉망진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도공의 손에 들린 ‘젖은 진흙’과 같았다. 아직 모양은 없지만, 무엇이든 빚어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초기 우주는 에너지가 극도로 응축된 ‘고에너지 상태’였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138억 년의 역사를 펼쳐낼 힘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장전되어 있었다.

이것은 ‘미래를 품은 혼돈’이다.


3-2. 종말의 혼돈 (끝): 방전된 배터리 🪫

반면, 열적 죽음의 혼돈은 바람에 날리는 ‘마른 먼지’와 같다. 이미 활시위는 떠났고, 배터리는 방전되었다. 에너지는 우주 전체에 얇게 펴져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뭉쳐질 수 없으며, 생명을 담을 수 없다.

창조의 혼돈이 ‘거룩한 준비’라면, 종말의 혼돈은 ‘영원한 침묵’이다. 재료는 같아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씨앗’ 유무가 이토록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4. 초기 우주의 역설: 뜨겁지만 가장 질서 정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초기 우주는 엄청나게 뜨거운 불덩어리(고에너지)였는데, 어떻게 질서가 있다고(저엔트로피) 말할 수 있는가?”

보통 뜨거우면 무질서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중력이 모든 것을 뒤집는다.

중력이 지배하는 우주에서는 물질들이 뭉쳐서 블랙홀이 되는 것이 가장 무질서한(고엔트로피) 상태다. 반대로, 빅뱅 직후처럼 물질과 에너지가 아주 매끄럽고 균일하게 퍼져 있는 상태는 중력의 입장에서 볼 때 극도로 정교하게 조율된 질서(저엔트로피) 상태다.

상상해 보라. 거대한 바위가 산 꼭대기 끝에 위태롭게, 그러나 완벽한 균형을 잡고 서 있다. 엄청난 위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굴러떨어지지 않은 정지 상태.

초기 우주가 바로 그랬다.

그것은 폭발 직전의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 정밀하게 세팅된 ‘수정란’이었다. 만약 초기 우주가 조금이라도 더 무질서했다면, 별도 은하도 생명도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는 시작부터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있었다.




5. 창조와 잉태: 미래를 품은 씨앗

결국 창조란 기계적인 조립이 아니다. 그것은 ‘잉태(Gestation)’다.

씨앗을 보라. 겉모습은 작고 볼품없는 껍질(혼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참나무 숲이 될 미래의 설계도(DNA)가 질서 정연하게 압축되어 있다.

“씨앗을 보고는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씨앗이 품은 미래는 분명하다.”

이 통찰은 창세 전의 혼돈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Rachaph)’는 표현은 어미 새가 알을 품으며 떨리는 모습을 의미한다. 창조는 차가운 공학이 아니라, 따뜻한 품음이었다. 초기 우주의 그 질서 정연한 에너지를 소모하여(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별을 빚고 지구를 빚고 생명을 빚어낸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 아이를 낳듯이, 우주는 자신의 질서를 허물어 생명이라는 ‘국소적 기적’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에너지 소모의 결과물이다. 무질서로 향해가는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잠시나마 질서를 붙잡고 생명을 노래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허무하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품은 질서 있는 혼돈’에서 태어나, 이제 스스로 또 다른 질서를 빚어내야 할 사명을 띤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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